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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이전 작업 /촛불집회기록들

촛불 예비군, 김원재씨를 만나다.


4월 19일 압구정역 근처에서 김원재씨(80년생)를 만났다. 그는 일 년 전, 서울 광화문 일대에서 열린 촛불집회에 참가했다가  촛불 예비군으로 활동했었다.  2008년 7월 26일  시위대 해산 및 진압도중 연행됐고, 집시법 및 일반교통방해죄로 약식벌금형을 받았다. 이에 정식재판을 청구했고 5월에 재판을 기다리고 있다.


-처음 예비군 복을 입고 촛불집회에 나오게 된 계기는?

△ 군화발로 짓밟혀 피 흘리는 여대생 사진이 인터넷에 퍼지고, 강제 연행되는 시민들에 대한 뉴스를 접하고는, 시민들을 보호할 필요성이 아고라에서 나왔거든요. 5월 26일 날 8명의 예비군이 처음 나왔는데요. 27일부터 50명으로 불었어요. 6월로 넘어오면서 300명까지 온 적도 있었고. 그때는 우리도 4개조로 나눠서 활동했어요. 예비군들이 한 일은 전경이 진압할 때 밀고 못 들어오게 하고,


경찰이 폭력 쓸 경우, 대신 맞아주고  다친 시민들이 있을 때는 응급 구조 활동도 했어요.  


그러다가 시위가 10월부터 수그러들었잖아요. 그런데 촛불예비군 부대는 청계광장 근처 무교공원에서 올 2월까지 촛불이 잊혀 지지 않도록 지키는 활동을 했어요. 그리고 2009년 3월 1일 날 ‘일어나라 대한민국’이라는 행진 퍼포먼스를 벌이고 잠시 휴정상태에요.

- 경찰, 검찰 수사에 대해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 약식명령을 받은 게 제가 아는 사람만 24명이거든요. 저는 7월 26일날 집시법 및 일반교통방해죄로 수서경찰서에 연행이 됐고 결국 벌금형을 받았어요.
 

그런데  신영철 대법관이 메일을 보냈다는 2008년 12월 11일 전후로 그 시점에 신기하게도 모두 약식명령을 받았어요.


그리고 올해 3월, 일제히 통지서가 날라왔고요. 다들 정식재판청구를 했는데 5월에 재판기일이 몰려 있어요.


차정현씨는 약식명령도 받고 무전기탈취 혐의로 기소도 됐는데요. 참 어이가 없는 게, 차정현씨에게 무전기를 뺏겼다는 전경이 누구냐면, 차정현씨가 오히려 시위대로부터 구해준 사람이거든요.  관련기사 [전경 구해줬더니 은혜를 원수로 갚아 ] 참조  그래서 현재
 아고라 청원을 받고 있는데, 2천명정도가 해주셨고 탄원서는 백부 정도 받았어요. [관련내용 참조]

- 이런 처벌을 보고 어떤 생각이 드는지?
△처음에 국방부가 예비군복을 입은 사람들을 처벌하겠다는 의사를 밝혔을 때 어이가 없었죠. 왜냐하면 저는 군인이 아니라 일반인이거든요. 시민들이 거리로 나와 어떤 요구를 할 때 정부는 잘못을 시인하고 고치는 방향으로 가야 하는데 무조건 누르고, 말로는 들어준다고 하지만 지금까지 참 일관되게 변한 게 없잖아요. 

- 이렇게 재판까지 가게 됐는데, 거리로 나왔던 게 후회되지 않는지?

△ 아니요.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온 시민들, 나오면 차 막힌다는 것도 알고, 정말 멍청한 사람들이잖아요. (김원재씨는 “시민들이 멍청한 게 아니라 예비군이 멍청한것”이라고 웃으면서 정정했다.)  죽어도 다시는 쳐다보기도 싫던 예비군복을 입고 시민들 대신 맞겠다고 나왔으니, 이런 멍청한 사람들이 어디 있어요?


하지만 우리가 거리로 나왔던 이유는 가진 사람이 더 가지는 세상이 아니라, 우리가 조금 가졌더라도 그걸 나누고 좀 더 행복하고자 나왔던 거잖아요. 촛불집회에서 나왔던 구호들은 모두 가족, 친구들과 행복하게 살고 싶은 사람들이 만들어낸 보통 사람들의 소망이었어요. 저는 촛불집회를 계기로 다양한 시각에서 그 입장을 바라보려고 애쓰거든요. 조/중/동이 좌파니 우파니 이렇게 편 가르기를 할 때 우리도 마찬가지로 “너 촛불 들었어? 촛불 안 들었어?” 이렇게 비판하는 쪽과 마찬가지로 편 가르기를 하고 있지 않은가. (강조하며) 촛불을 안 들었다고 민주적 시민이 아닌가요? 그건 아니잖아요! 촛불집회가 미국산 쇠고기 협상에서 촉발됐지만, 사람들의 그 내면에 숨어든 이야기를 봤으면 좋겠어요.



요새 촛불집회 1주년이라, 각종 언론에서 인터뷰 제의가 많이 들어오는데요. 대부분 앞으로 활동계획이 뭐냐고 물어요. 그럼 저는 이명박 정권 하에서 회사 안 짤리고 꿋꿋이 다닐 것이고, 제 주변 친구/가족 5명이상 투표 시킬 것이라 말하거든요. 저는 1주년에 의미를 부여하고 싶지 않아요. (긴 싸움인 것을 알았고 또한 12라운드 중 고작 1라운드가 끝난 경기이기 때문에 현재연행자가 1900여명) 대신 그 자리에 있다가 에 우리 대신에 연행된 분들을 잊어주지 말았으면 좋겠어요. 촛불을 처음에 들었던 소녀들의 마음을 잊지 말아줬으면 좋겠고... (잠시 생각하다가) 그 예비군들이.... 보기 싫어 옷장 한 구석에 처박아 두웠던 예비군복을 입고 나올 수밖에 없었던 그 사람의 마음을 잊지 말았으면 좋겠어요. 우리 예비군들의 마음역시 작게나마 기억해주셨으면 합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