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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이전 작업 /촛불집회기록들

덤프노동자들이 촛불집회 못가는 이유

2008년 6월 19일 오후, 인천 연안부두에 위치한 화물연대 노동조합 인천지부를 찾았을 때 나에게 건넨 부탁은 대부분 같았다. 많은 화물운전자들이 전에 덤프를 운전했던 경험들이 있었기에 ‘덤프연대’ 파업에 관심을 가져달라 부탁해온 것이다.

관련기사 : 화물연대 타결 뒤엔 촛불민심 있었다 http://2bsi.tistory.com/7

이하는 당일, 덤프연대(전국건설노동조합 기계분과위원회) 노동자들과의 인터뷰.

△ 화물과 덤프의 고민은 거의 비슷하죠. 다른 점이 있다면  저 남바에요. 저기 남바가 주황색 아네요? 저 덤프 주황색 남바는 중기, 건설기계로 들어가고 화물은 노란 남바로 들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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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물은 유가보조를 받는데, 우리는 근로여건도 더 나쁜데도 건설기기(중기)이기 때문에 도 유가보조는 못 받아요. 화물보다 더 열악하죠.

- 왜 화물은 뜨고 덤프는 주목을 받지 못했다보십니까?
▲ 어떻게 됐냐면 일하는 시스템 자체가 달라요. 화물은 운송수단인데, 정부차원에서는 덤프는 건설기계로 들어가 있고 화물은 화물자체로 돼 있으니깐, 덤프는 정부차원에서 건설 쪽에 위임을 해요. 건설 쪽에 떠넘겨서 건설업자들이 갖고 노는 거죠. 우리를.

△ 화물연대는 2002년 이후 과격하게 투쟁하면서, 뉴스에서도 ‘물류대란’이란 말을 떠들어대다 보니 덤프나 건설은 상대적으로 가라앉죠. 저 사진에 있는 게 덤프에요. 저런 차들은 화물 추레라처럼 똑같이 고속도로 달리는데, 정부에서는 포크레인이나 불도저처럼 3-40km로 운행하는 줄 알아요. 중장비로 생각하는 거죠.

- 설마 모를까? 자기들도 고속도로에서 덤프 운행하는 걸 봤을 텐데.
△ 알면서도 책정을 그렇게 해논다니깐요, 경유를 똑같이 쓰는데도!! 저것도 화물로 생각해야 하는데!!



- 눈 가리고 아웅이네요?

△ 당연하죠!

- 왜 그런 정책을?
△ 처음 편입 할 때부터 잘못한 거죠. 중기로 편입을 시켜버렸으니깐. 덤프는 보통 장거리를 안 떼요.

- 왜요?
△ 덤프는 타이어가 총 열 두 짝인데 일년에 한번 갈아요. 앞 바퀴는 5십만원, 뒷 바퀴는 4십만원, 그렇게 총 540만원이 들어가고.

오일을 두 달에 한번 가는데 3-4십만원이야. 그렇게 한 달에 부대비용으로 들어가는 것만 50-100만원을 잡는 거야, 차수리 빼고 그래서 멀리를 못가요. 인천에서 가까운 레미콘 공장에 자갈, 모래를 납품하는데, 거의 대부분이 그래요. 내가 12년 했는데, 10년 전 단가가 그대로에요. 저도 처음에 시작할 때는 나도 깨끗했으니깐 카드 긁고, 그때는 깨끗했어요!! 신용카드 한도액이 2천만원 넘는 게 있었고 그랬는데, 신용불량자 돼서 차를 마누라 이름으로 바꾸게 됐거든요. 여기 인천에서 미사리 조정경기장에 저 큰 차로 짐을 실고 가는데도 운임비가 8만 4천원 밖에 안 나와요. 그런데 사무실에 10%로 깡을 해요. 월 매출의 10%를!! 천 만 원 매출이면 백만 원을 내요. 그래서 8만 4천원 운임비를 받고 갔다면, 거기서 돌아올 때 뭘 싣고 와야 해요. 그것을 ‘완탕치기’라고 하는데, 비도 오고 현장상황이 안 좋아져서 편도로 오게 되면 내 돈을 꼴아 박아야 하는 거야. 일단 편도로 갔어도 만원이고 2만원이고 남아야 그것을 올려 보내는 것인데 그게 지금까지 요지부동이었다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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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서 ‘기름 값 인하’를 요구하시는 겁니까?
△ 기름 값보다는 단가가 올라가야죠. 운송비는 묶여 있는 상태에서 기름 값은 자꾸 올라간 거야. 운송비는 10년 전 단가 그대로야. 예전에는 24톤 덤프트럭들은 모래만 운송했지 토사를 하지 않았어요. 모래만 싣고도 남았으니깐!! 그런데 다른 돌파구를 찾다보니깐 예전에 안하던 토사도 찾아야 하고, 중요한 것은 현실적인 단가야. 편도로 가더라도 단 만원이라도 남아야 하는데, 오히려 내 돈을 꼴아 박아야 하니 비가 오거나 그러면 일을 접게 되는 거예요. 나가봐야 손해 보니깐 안 나가는 게 남는 거 아네요? 사무실 10%를 때줘야 하는 상황이 오고.

- 그럼 지금은 누굴 상대로 투쟁하는 겁니까?
△ 우리가 다이렉트로 건설업자와 안 되니깐 뭉쳐서 정부에다가 “니네가 도와줘”하는 거죠. 정부에서 법 제정해준 거 가지고 그게 건설업자들에게 팩스로 다 들어가는데 건설업자들은 실행을 안 해요. 정부에서 “니네 이렇게 해줘라”고 공문을 받고도.. 우리가 엊그제, 과천 앞에 가서 시위를 해서 거기서 “해줄께”라는 공문을 받아냈거든요.



- 그럼 된 거 아닌가요?

△ 그런데 시스템이... 건설업자들이 그 공문을 받고도 그대로 있어. 우리가 과천에서 합의문을 얻어다가 이것을 가지고 또 건설현장에 쫒아가서 또 관철시켜야 해요. “도장찍어줘!! 해줘!!!” 이래야 한다니깐!! 현장에서 왜 무용지물이 되냐면 고발사항은 아니고 벌금사항이라서 그래. 그래서 고발사항으로 높여달라고 강력하게 높여달라고 요구를 했어요. 웃긴 건 현장 가서 이행을 안 하면, 건설업자도 벌금을 때리지만, 우리가 가서 “계약서 써주세요” 해서 안 써줬잖아요. 그래서 일했어. 이행이 안 되면 우리도 벌금을 내야 해.

- 여기도  파업 집회 매일 하나요?
△ 요즘은 파업 문화제라고 하지 파업집회라고 안 해. (둘 다 폭소)

- (웃으며) 파업문화제는 어떤 걸 말하나요?
△ 16일 날 마로니에 공원에 만명 정도가 모였어요. 그날 거기서 1박 2일 상경 투쟁 하는데, 여의도에서 돗자리 깔아놓고 그냥 잤어요. 거기서 자정까지 민중가요 가수들 저기 하고 춤추고 놀다가 뿔뿔이 흩어져서 돗자리 깔아놓고 잤어요. 그때 촛불시위 하는 사람들이 지나갔어요. 집행부에서도 촛불문화제에 동참하려고 했는데 그냥 접어버렸어요.

- 왜요?
△ 왜냐하면 이렇게 큰 단체가 촛불현장에 투입되면 그때는 상황이 커져요. 이 사람들은 시위도 해봤던 사람들이고 전경들과 몸싸움, 물대포도 맞아봤고 나는 날라 오는 돌맹이도 맞아봤어요. 전경하고 대면하고 있으면 시민에게 물대포를 함부로 쏠 수 없는데 우리 같은 사람이 전면에 나서면 과격시위가 되버리니깐, 정부에게도 코를 걸릴 수 있고... 촛불은 평화시위인데 이런 단체들이 단체복 입고, 저녁이니깐 술 한 잔도 했고 그럼 거의 폭력성을 띠어버리지. 뭐 하자 하면 위에서 지침이 내려오면 그냥 해버리니깐!! 막말로 요즘 사람들. 앞에서 저기하려면 “비폭력!!” 외치는데 우리는 ‘누구 맞았다’ 그럼 악이 받혀서 그때부터 과격해져버리지. 우리도 동참하고 싶지만 민주시위를 보호하고 싶은 차원에서 따로 떨어져서 동참해야 한다고 봐요.

- 요즘 촛불문화제 보면 어떠세요? 혹시 놀랬나요?
△ 놀래고 자시고 없어. 우리가 죽을 판에 촛불 시위 한다고 감은 오지만 내 자체가 힘든데, 소고기 때문에 한다고 해도 감이 안 와 닿아요. 내가 힘들어죽겠는데. 어쩌면 촛불집회는 있는 사람들이나 하는 거고. 내가 어려우니깐 동참을 못해. 거기서 한가하게 할 수가 없어요.

- 어쩌다 다리를 다치셨죠?
△ 파업하니깐 여태까지 못했던 수술도 하는 거고. 이것도 파업이니깐 한 거야. 운전안하니깐.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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