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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그것이 알고 싶다> 관련해서 (2012.2.18일 방영예정)


이하는 2월 방영 예정인 SBS <그것이 알고 싶다>와 관련되어 내가 담당 PD/작가 그리고 왜곡 편집을 우려해 다른 소속 언론사 기자 세 분에게 함께 보낸 2월 9일자 이멜 내용 이다. 원래는 단독 인터뷰를 분명히 거절했으나 경남도민일보에서 마련해준 <간담회>자리까지 카메라를 들고 찾아 왔기에, 매몰차게 거절할 수가 없었다. 이멜 내용을 공개한다.

공개 이유 ;
“이게 내 입장이니 내 발언이 도마 위에 올라도 귀찮게 전화하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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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에 000 피디님께서 경남도민일보 간담회를 찍어가셨는데, 아래, 제 주장에 한해서는 편집하여 <그것이 알고 싶다>에 인용하셔도 좋습니다. 그런데 부러진 화살 관련하여 최근 진중권 씨 주장과 저와는 분명한 입장차이가 있다는 걸 밝혀둡니다.

첫 번째는 김교수를 싸이코라고 표현한 점과 재판 항소심에서 필요 없는 사안을 가지고 시비를 건다는 점입니다. 김교수가 싸이코로 보일만한 그런 언사(개새끼, 쓰레기, 쌍껏.....)를 사용하는 점은 팩트지만, 그렇다고 싸이코 정도는 아닙니다. 다른 사람보다 <막말>을 좀 하긴 하지요. 그것은 태어날 때부터 그랬다기보다 사법부에 보복을 당한다고 느낄수록 더욱 심해지는 것 같습니다.

진중권 씨가 재판에 시비를 건다는 건 동의 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항소심이 왜 있겠습니까. 김교수가 1심에서 구속당한 상태에서 변호인과도 궁합이 잘 안 맞았고 게다가 단식하느라 재판에 충실히 임하지 못한 것은 사실이나, 항소심에서 재판받을 권리가 왜 없단 말입니까. 저는 <부러진 화살>이란 책에서 사법부에 의해 <재판받을 권리>가 침해당하는 현실에 대해 폭로했고 제가 문제 삼고 싶었던 부분도 이 부분입니다. 그리고 법정은 판사에게 모든 권한이 집중돼 있기 때문에 판사에게 감히 대들 수 없습니다. 이런 현실에서 법대로 하자며 맞서 싸운 김명호와 박 훈의 의미는 대단히 큽니다.

단지 영화와 관련되어 <허구성>을 이야기할 부분은 아래와 같습니다.

1. 안성기 캐스팅, ; 영화에서 안성기가 <안 쐈습니다>라고 하면 진짜 안 쐈을 것 같고, 죽일 고의가 없었다고 하면 (안성기의 사회적 이미지 때문에) 관객들은 그런 것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하지만 실제 김교수의 마음은 알 수가 없다. 이를 혼동해서는 안 된다. 김교수가 이전에 석궁연습을 했고, 사건 당시 가방 안에 회칼이 있었으며 석궁을 가지고 갔다는 점이 검찰의 <고의>성을 뒷받침하는 부분인데, 이는 정황적인 증거와 재판에서 증거 모두를 합하여 판단할 사항이지, 김교수가 고의성이 없었다고 주장한다고 그의 말을 백프로 믿는 것은 곤란하다. 법정이라는 공간은 자기에게 불리할 진술은 안 할 권리가 있다. 그런 권리 차원에서 봐주어야 한다. 단지 김 교수의 진술이 힘을 얻는 이유는 재판에서 일관성을 유지했기 때문이다. 그의 주장을 반박하기 위해서는 검찰이 증거조사 (혈흔감정과 석궁실험/박홍우 와의 대질신문/부러진 화살의 행방 등)를 해야 했다. 하지만 검찰은 이에 관심 없었고, 오히려 피고인 측에서 주장했는데 재판부는 이를 묵살했다.

2. 영화에서 박홍우가 증인석으로 섰을 때, 안성기는 <법을 어긴 걸 인정합니까?> 라고 묻는 장면이 나온다. 안성기가 이렇게 물으면 박홍우가 무슨 큰 법을 어겼을 것이라 생각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그 내용은 판사 대부분, 즉 판사 한명에게 배당된 사건 수라는 현실적 이유를 들어 지키기 힘들다고 주장하며, 판사들 대부분 훈시규정으로 배워왔던 것들이다. 가령, 답변서를 한달 내에 내라. 재판은 6개월 내에 끝마쳐라. 등등. 그리고 녹음 녹취 규정도 (박홍우 만이 아니라) 많은 판사들이 허가를 잘 안 해주는 것들로, 김교수는 이런 판사들의 관행(김교수 입장에서는 불법성)에 제동을 건 것으로 봐야 한다.

3. 박 훈의 선동성 ; 영화에서 박훈은 마지막 장면에서 기자들 모아놓은 상태에서 박홍우가 증거들을 조작했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 와중에 허둥대다가 와이셔츠에 피를 묻히는 걸 깜빡 했을 거라는 거다. 그 외에도 박훈은 박홍우가 거짓말 증거로 초기 초등수사 진술의 횡설수설을 든다. 고법부장이나 지낸 분이 어떻게 저런 진술을 할 수 있을까라고 말이다. 나 진중권은 옷의 피가 동일인의 피이기 때문에 혈흔감정은 할 필요도 없다고 한다. 그게 누구 피겠냐는 것이다.

내 주장은 이렇다. 두 주장 모두 한 가지 사실을 가정하고 있다. 즉 고법부장판사는 완벽한 인간이라는 것이다. 박훈 관점에서는 고법부장판사는 형사소송을 많이 해 본 완벽한 인간이기 때문에 절대로 횡설수설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주장하고 있으며 진중권은 고법판사는 완벽하게 정직한 인물이기 때문에 절대로 조작이나 거짓말은 안 할 인물이라는 것이다.

나는 고법판사는 판사이기 이전에 인간이며, 아무리 배운 게 많은 이론에 강한 인간이라고 해도 실제로 충격적인 상황에 도달하면 그때 심리적 상태에 따라 말이 횡설수설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이 점에서는 박훈과 다르다.

또한 그가 인간이기 때문에 집까지 찾아온 김명호가 괘씸해서 조작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점에서는 진중권/조국과 다르다. 그래서 재판에서 증거조사와 혈흔감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증거조사가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는 이런 주장들 모두 위험성을 수반한다. 만약 박홍우가 거짓말을 했다면 거짓말의 범위도 문제가 된다. (가령 예를 들어 둘이서 엎치락 뒤치락 싸우다가 바닥에 떨어진 화살에 찔릴 수도 있는 등) 어쨌든 화살에 의한 상처이기는 한데, 그게 고의적이냐 우발적인 것이냐, 그것만 거짓말 했는지, 아니면 아예 아무 일도 없었는데 통째로 조작했는지 우리는 알 수가 없다. 그런데도 영화에서 정의로운 박준(박훈)은 아주 확신에 찬 태도로 통째로 조작했다고 주장하는 장면에서 관객은 그렇게 또 믿게 된다. 이는 선동적이라 할 수 있으며, 나중에 옷의 피가 박홍우의 혈흔이라고 밝혀진다면, 그때 뒷감당을 어떻게 하려는지 걱정이 된다.

4. SNS에서 일고 있는 이정렬 판사 비판; 김교수는 이정렬 판사를 판결 전까지는 괜찮은 판사라고 여겼고 칭찬하고 다녔다. 그리고 그에게 일말의 기대를 했다. 그러다가 패소 판결을 받은 후부터 이정렬 판사는 김교수에게 쓰레기가 됐다. 내가 이정렬 판사를 비판할 수 있는 부분은 당시 민사재판 판결문 정도다. 인성까지 규율하겠다는 태도가 서려 있는 판결문이다. 그 외에 이정렬 판사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다. 물론 판결에 대해서는 비판할 수 있다. 하지만 <석궁사건> 판결 하나로 이정렬 판사의 모든 인생을 부정해버리는 마녀사냥은 참으로 우려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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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여> 석궁사건 뒷담화를 이야기하는 경남도민일보 간담회에서 (우리가 믿고 싶은 것과 달리) “박홍우 판사가 진짜 피해자 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 책을 썼다는 내 말에 무척이나 의외라는 반응이었다.

사람들은 내게 물었다. 왜 “혈흔감정을 해주지 않은 것 같냐고” 내 대답은 (그 혈흔이 조작됐기 때문이라는 답변을 기대하는 분들과 달리) 체면(권위주의)으로 해석이 된다고 했다. 고위법관 명예훼손 고소 건도 직접 하지 않고 경비대장을 시킨 것도 체면과 무관하지 않았던 것처럼 동료 법관에게 피를 달라고 하는 것도 그의 체면을 손상시키는 행위로 생각하지 않았나, 하는 게 내 의견이다. 체면중시는 곳곳에서 발견된다. 폭행에 의한 상해죄라면, 박홍우는 김명호에게 치료비를 물렸어야 했는데 그렇게 하지도 않았다는 점.

그럼 왜 그렇게 재판에 증거조사를 안 해준 것이냐고 물었다. 내 대답을 통해서 자신의 생각을 확인받고 싶었던 분들은 실망하셨을 것이다. 사람들은 나에게서 <박홍우 감싸기>라는 단어를 원했겠지만, 나는 <패거리주의>라고 답했다.

내 발언들이 사법부가 좋아할만한 이야기였다고 하는 분도 있다. 김명호 교수는 남들이 할 수 없는 힘든 싸움을 했다. 그러나 판사 집단을 악마, 쓰레기로 표현하며 그들을 처단해야 한다는 표현에는 동의할 수 없다. 어떤 조직이라도 선의의 의도를 가지고 일할 수 있는 사람들이 많아지도록 그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어야 하지, 사람 몇 명 마녀사냥 식으로 몰아간다고 세상이 변하나? 마녀사냥은 단순한 소비성 분노일 뿐이다.

취재하면서 사람들이 나에게 가장 많이 하는 질문 중 하나, “사법부는 어떤 점을 고쳐야 할까요?”다. 내 대답은 일단 “판사 월급이나 올려줘라!”다. (이 말의 의미는 미국처럼 경제적 고민을 하지 않도록, 돈 팍팍 주면서 불법을 저질렀을 때는 완전 제명해버리는 구조로 가자는 거다.)